책과 이야기/역사

[역사 속 사건] 도끼만행사건

거성이 2019. 1. 2. 22: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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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76년 일어난 사건이다.
현재의 군사분계선이 당시는 존재하지 않아, 북한군과 우리군, 유엔군이 항상 동시 상주하고 있었다. 그렇기때문에 각 초소의 역할이 중요했는데, 우리의 3초소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했다.

 3초소는 북한의 4,5,8초소를 감시하는 역할을 띄고있어, 서포트해 주는 초소가 필요했다.
그 초소가 우리 군의 5초소였다. 그러나 5초소에서 3초소를 보는 것이 미루나무때문에 제한되기 시작했다.
그래서 UN군 경비대 작업반이 자르기를 권고했고, UN군은 이를 시행하기로 한다.

  처음 8월 6일 미루나무를 절단하려고하자, 북한군이 이의제기를 하여 작업이 중단되었고, UN군은 절단이 아닌, 가지치기로 작업을 바꾸어 8월 18일 시행하였다. 북한이 역시 이의제기를 하였지만, 설명한 끝에 수긍하였고 잘 넘어가는 듯 했다.

 그러나 10시 47-50분 사이 북한 박철 중위가 나타나 경비중대장 故 아서 보니파스 대위에게 큰일 나기 싫으면 작업을 중단할 것을 요구했다. 당연히 보니파스 대위는 이를 무시하고 작업을 속행하도록 지시했고, 11시 30분에는 북한군 경비병의 숫자가 30명으로 늘어났다. 박철 중위는 "그만두지 않으면 죽이겠다"고 2차 위협을 가했으나 보니파스 대위는 재차 이를 무시했다. 

그러자 박철 중위가 소매를 걷고 차고있던 손목시계를 호주머니에 넣으며 부하들에게 신호를 보내자 북한 육군 경비병들은 일제히 소매를 걷었고 박철 중위는 즉각 "죽여!"라고 소리 지르며 보니파스 대위를 걷어차 폭행을 가했다.

 다른 북한군들은 주먹과 곤봉을 이용해 UN군 장병들을 상대로 폭행을 했으며 노동자들이 달아나면서 버려진 벌목 도끼로 아서 보니파스 대위의 머리를 찍어 살해했다. 여러 병사들이 부상을 입었으며 보니파스 대위뿐만 아니라 소대장 고 마크 배럿 미 육군 보병중위도 현장에서 참혹하게 살해당했다.


 분노한 미국은 휴가중인 UN군 사령관 및 미 육군 대장인 리차드 스틸웰을 바로 한국으로 가게하고, 박정희 대통령과 대화 후 데프콘 3를 발동한다.

 당시 미국 대통령인 포드 대통령은 즉각 북한측을 비판하는 성명을 발표했다.
또한 미국내에서 미국인 2명을 때려죽인 대가를 반드시 치러야 할 것이라는 소리가 나오며  "빨갱이들의 피를 반드시 보고야 말겠다."라는 등 미국의 분노는 극에 달했다.

하지만 이 일로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면전을 할 수 없어 원인인 미루나무를 제거하고, 제거과정에서 도발행위는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모른다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과정에서 북한도 준전시태세 선포인 북풍 1호를 발령하였다.

물론 위에 말했듯이 이 작전은 북한을 전면적으로 공격한다는 것보다 휴전선의 고질적인 문제였던 서해안 부분을 정리, 개성 및 연백평야로의 진격, 38선 이남 대한민국 영토의 수복 등을 고려하였다.

 다만 공산권 측에 명분을 주지 않기 위해서 북한이 추가 도발 없이 침묵한다면 무력시위로 끝낼 계획이었다.
 물론 유사시에 북한이 도발을 한다는 조건하에 바로 반격해서 북한을 영원히 지도에서 없애버릴 준비는 끝내 놓았다. 일단 미군의 계획은 교전사태가 발생하면 포병 부대는 개성의 인민군 육군 막사에 포격을 개시하고,개성 위쪽 시변까지 포격해서 인민군 육군 포병 전력을 싸그리 없애버린다. 였으며 북한 육군 전차 부대의 남하와 같은 구체적인 전시상황 계획까지 완벽하게 수립했다.

 결론은 '아무 일도 있어나지 않았다.' 였지만 우리나라에서 북한이 아무말을 못하고 깨갱한 사건 중에 하나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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