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이야기/역사

[역사 속 사건] 녹둔도는 뭘까요? .....1부

거성이 2019. 1. 8. 0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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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녹둔도, 아는 사람이 생소한 땅이다. 독도나 간도 등과 같이 영토분쟁이 있으면 엄청난 자국민의 관심을 받지만 이 땅은 그렇지 못하다. 

녹둔도는 그 흔한 기록조차 모두 소실되 '두만강 하구 두만강의 물이 동해로 나가는 통로에 위치하고 있다.' 라고 추정할 뿐인 땅이다.

위치를 추정하기 어려운 이유는 기록이 많이 없을 뿐만아니라, 김해평야와 같이 퇴적작용이 활발한 땅이여서 점점 크기가 늘어나 과거의 어느땅이 녹둔도인지를 정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이유, 1860년 북경조약을 통해 러시아에 강제병합된 뒤로부터 러시아의 군사지역으로 이용되어 접근이 제한된다는 이유도 있다.


 녹둔도는 <<세종실록>>지리지에서 그 이름이 처음 등장하는데, 지리지에서 다음과 같이 등장한다. 

"조선 세종 때 6진을 개척한 이래, 여진족의 약탈을 막기 위하여 섬 안에 길이 1,246척의 토성을 쌓고 높이 6척의 목책을 둘러 병사들이 방비하는 가운데 농민들이 배를 타고 섬을 오가며 농사를 지었다. 농민들은 상주가 금지되었고, 춘경 추수기에 한해서만 출입이 허가되었다."

 이 기록으로 미루어 보자면, 하천 하단의 삼각주에 위치한 땅으로 농사가 잘되는 이점이 있었지만, 이민족의 침입이 많은 땅이여서 약탈이 자주 일어나는 땅이라고 추정이 가능하다. 


또 다른 기록을 보면 친숙한 인물이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과 관련된 기록으로 1587년에 일어난 '녹둔도 사건'에서 이순신 장군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순신 장군은 당시 여진족의 심상치 않은 행동을 감지하여 북병사 이일에게 군사를 증원하자는 서신을 보내자고 요청하지만, 묵살당하고 다른 활로를 찾아 잠시 자리를 비운사이 여진족의 공격을 받는다. 이 때 조선군 11명이 죽고, 160명이 포로가되고 말 15필이 약탈당했다.

치욕을 갚기위해 이순신 장군은 경흥부사 이경록과 반격을 해 적을 물리치고 포로 중 50명을 되찾았지만, 자기 안위만을 생각하는 이일의 중상모략으로 이때도 백의종군을 하게된다.


 역사적 사실은 이쯤에서 그만두고 우리의 땅인 녹둔도를 우리는 어떻게 빼앗겼는지에 대해서 말해보겠다.

가장 큰 이유는 우리나라에 힘이 없다는 이유이다. 19C 제국주의란 이름하에 약육강식의 세계에선 힘이 없으면 영토를 뺏기는 것은 당연했다.

조선은 이의를 제기했지만, 돌아오지 않는 메아리일 뿐이였다. 이렇게 우리는 우리의 땅을 뻇기고 현재까지도 잊혀지게 된 것이다.


1부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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