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과 이야기/인문

[생각을 주는] 유교로 본 중국의 모습

거성이 2020. 4. 12. 12: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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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연히 중국에 대한 동영상, 책에 대해서 보다가 생각이 나 글을 써봅니다.

 우리나라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유교에 대해서 모르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유교란 춘추시대의 인물인 공자가 이전 시대의 관례, 문화들을 모아 만든 선현들에 대한 예의지키기 위해 만든 종교(?), 학문을 말한다. 동아시아의 역사 속 국가 이념으로, 관습으로 뿌리를 내렸으며 현재도 우리나라를 비롯한 동아시아 국가 문화의 갈래로, 사회의 규범으로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는 학문이다. 

조선이라는 나라를 거치면서 유교에 대한 이미지가 우리나라에는 좋지 않지만. 보통 유교에 대해 학교교육과정을 거친 사람들은 유교를 전쟁이 아닌, 위의 사람과 아랫사람이 신의와 믿음으로 조화롭게 나라를 다스리는 학문으로 알 것이다. 하지만 이는 그릇된 것이다. 

 유교는 과거부터 전쟁을 강자의 입장에서 해석하기 수월하게 만든 학문으로 강자들의 명분이라는 것을 만들어주는 학문의 역할을 하였다. 우리의 역사에서 본다면, 수나라의 침입, 당나라의 침입 등 지속적으로 중국이 우리나라를 침입한 이유를 만들어 준 학문이다.

맹자에서 이런 의미를 한 구절이 나온다. 위의 나라가 아래의 나라를 벌주는 것은 당연한 자연의 이치이다.’ 자세히 생각을 해보자. 현재 중국과 인접국들이 갈등을 벌이는 형태의 원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중국해의 문제, 소수민족 탄압 문제 등 중국의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추가적으로 이러한 의미의 연장선으로 강대국이 약소국에게 기만전술을 하는 것도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중국은 생각한다. 중국에 들어갔던 우리나라 기업뿐만이 아니라, 사람들도 생각을 해보자. 계속 그곳에서 돈을 잘 번다.’, ‘중국이란 나라는 믿을 수 있는 나라다.’라는 말을 절대로 나오지 않고 있으며, 기만전술을 하는 중국의 모습을 우리는 많이 볼 수 있다.

 즉 중국에서 유교가 살아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하나의 중국이라는 모습을 지속적으로 표현할 수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그렇다면 중국은 왜 이렇게 강대국과 소국의 관계에 집착하고, 명분을 쉽게 만들어 침략을 하려 했을까? 

 당연히 생존에 유리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중국의 역사를 한 번 보자. 중국이 동등한 나라였을 때 중국은 어떠한 모습이었는가? 멀게는 춘추전국시대. 516, ..... 일본의 괴뢰정권 시절 등 국가의 모습이 찢어지고, 힘이 분산되었을 때는 중국의 사람들이 모두 살기 어려웠으며, 혼란을 겪는 시기였었다.

이러한 혼란으로 사람들이, 지배층이 위계질서를 중요하게 여겼던 것이다. 동등한 여러나라일 때의 모습보다 강력한 하나의 국가로 존재할 때, 다른 나라와의 관계에서도 내부적으로도 생존에 유리했기에 하나의 중국을 만들기 쉬운 유교가 다른 여러 학문과의 경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다.

 제 생각을 표현한 글이며, 당연히 틀릴 수 있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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